인도에서 본 한국인의 획일적인 여행패턴








바라나시행 기차를 타다



바라나시행 기차는 15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쉼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원래대로라면 13시간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연착을 밥먹듯이 해대는 인도기차의 특성상 제 시간에 도착할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저버리고 있었다.
생전 안읽던 가이드북을 꺼내서 읽고 있자니 풀린 긴장 탓인지, 수면제화되어 버린 활자 탓인지 슬금슬금 잠이 밀려왔다.
MP3를 귀에 꽂고는 머리를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 잠을 청하려다가 어떤 배낭족 여자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나서 실실 쪼개고 말았다. 




              그녀도 나처럼 혼자 기차를 탔다고 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인도인밖에 없어서 잔뜩 긴장하기는 했지만 덜컹거리는 기차의 흔들림은 
              가뜩이나 여행에 지친 그녀를 잠의 나락으로 빠지게 했다.
              MP3를 귀에 꽂고는 볼륨을 높힌 뒤, 아주 오랜만에 깊고도 달콤한 낮잠에 빠져 있었는데 
              문득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잠결 속에서도 느껴지던 불쾌한 기분은 그대로 적중해서 이어폰 선에 연결되어 있어야 할 MP3만 고스란히 사라지고 없었다.
              사라진 것은 MP3뿐만이 아니었는데, 
              기차를 탈 때부터 한참이나 기분나쁜 눈으로 빤히 그녀의 동태를 살피던 맞은 편의 인도여자도 덩달아 종적을 감췄다.
              MP3 말고는  도난당한 물건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듯 이야기를 했고
              덧붙여 인도기차에서는 늘 조심하라는 당부도 아끼지 않았다.





















내가 3A급 기차를 탄 이유



주위를 둘러보니 내게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 눈인사를 나눴던 브라만 승려는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고
바라나시로 순례여행을 떠나는 가족처럼 보이는 단체는 비닐 봉지에서 뭔가를 꺼내서 쉼없이 먹으면서도 나지막하게 수다만 떨었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장이 내게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손님에 대한 의례적인 관심에 불과했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사람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3A급 이상의 열차는 나같이 비싼 장비를 들고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벼룩 하나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있듯이 돈 몇 푼 아끼려다 비싼 장비를 몽땅 잃어버리면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는가.
비록 3A급이 배낭족들이 많이 애용하는 SL급에 비해 몇 배의 가격을 지불해야 하긴 하지만 어느정도 안전이 보장된다는 생각에 주로 이용하였다.
앞의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SL급 기차에서 당한 도난사고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지금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려는, 그리고 일반 인도인들과 사귀며 낭만적인 여행을 즐기려는 배낭여행자들에겐 적극 추천할 등급의 열차이긴 하지만
나처럼 몇 개의 렌즈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진여행자들에겐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타라고 권유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시원하다 못해 추웠던 3A급 인도기차



서늘한 라다크를 떠나  델리에 왔을 때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감당할 수 없이 내리쬐는 혹심한 불볕더위였다.
동남아의 왠만한 더위에도 끄덕없이 버텨오던 체력이었는데 가뜩이나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치렁치렁 매달고 다니던
나의 허약한 체력은 금새 바닥이 났고 숨이 막힐 정도로 습도놓는 더위 앞에서 사진 찍기보다는 휴식이 다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쩌면 델리에서 며칠동안이나 머물면서도 유적지 한 군데도 제대로 돌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말을 여실히 증명하는 셈이었다.
짬짬이 코넛 플레이스로 달려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진한 커피를 마시는 등의 호사스러움도 체험하기도 하고,
빠하르간지에 있는 한인식당 '쉼터'에서 시원한 맥주로 달궈진 몸을 식히기도 했지만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할 뿐이었다.
오래된 동력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가스로 인한 매연과 끝없는경적소리로 여전히 거리는 극도의 혼란스러움을 유지하고 있었고,
습기가 잔뜩 배인 굽굽한 골목에선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자극적인 악취가 피어올랐으며 한낮의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델리는  찜통과도 같았다.



이런 혹독한 더위에서 무려 15시간동안 나를 해방시켜 준 것은 바로 인도의 기차였다.
에어컨이 달려있는 3A급 기차는 마치 외부의 불볕더위에는 전혀 아랑곳없다는 듯이 서늘한 바람을 연신 토해내고 있었다.
얼마나 강력하게 틀어대던지 나중에는 너무 추워서 배낭 깊숙히 넣어놓은 잠바를 꺼내 입어야 했다.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렇찮아도 등에 잔뜩 돋은 땀띠의 위세가 한껏 누그러든 것은 다행스러웠다.
그 와중에도 몇 몇 사람들과는 말문까지 트는 사이가 되어서 잠시 정차역에 내려 담배를 피러갈 때도 놔둔 짐을 봐달라며 부탁까지 했다.
어느새 노을이 빨갛게 물드는 해거름 시간이 되었음에도 달궈진 플랫폼의 열기는 여전히 후끈거려서 차마 몇 모금 빨지도 못한 채 피신하듯 들어와야 했다.
간사한 것이 인간의 육체라고 하더니 그 새 에어컨 바람에 적응되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꼴을 보니 웃음이 났다.
기차에서 파는 도시락을 시켜먹고는 일찌감치 자리를 폈다.



단지 10루피(250원) 더 줬을 뿐인데...




그렇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바라나시 졍선역에 도착했다.
트랙을 내려서자마자 훅 끼쳐오는 습기 잔뜩 먹은 불쾌한 더위에 잠시 긴장하기도 했지만
나를 더 주눅들게 만든 건 내 앞으로 떼거지처럼 몰려드는 릭샤왈라들의 노골적인 시선 때문이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장 긴장되는 곳이 바로 목적지의 역이나 공항 등에 막 도착했을 때인데,
가이드북이나 여행정보를 통해 이미 완벽하게 숙지했다고 자부하는데도 막상 기대와는 다른 환경에 주눅이 들고 만다.
함께 기차를 타고 왔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도 지독한 길치인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얼음처럼 꼼짝않고 서 있기만 한다.
그렇다고 달려오는 릭샤꾼(또는 택시기사)들에게 절대 먼저 손을 내미는 법은 없다.
먼저 그 곳의 상황을 보고 그들이 제시하는 금액을 확인한 다음 선별해서 내가 골랐으면 골랐지 내가 타켓이 되어 끌려다니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바라나시 졍선역에서도 내 오랜 여행습관처럼 그렇게 되길 기다렸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오토릭샤는 일단 제쳐두고 싼 가격을 제시하는 사이클 릭샤를 골라 짐부터 뒷좌석에 올려놓고는 몸을 실었다.
몸뚱이가 불볕더위 속에서 그대로 녹아내려버릴 것 같이 연약해 보이는 영감님은 그래도 힘차게 페달을 밟으셨다.
고돌리아로 가는 길은 정션역에서도 꽤 멀었는데, 패인 길을 달릴 때면 릭샤왈라 영감은 자전거에서 내려 직접 끌기도 하셨다.
쪼그라든 그의 어깨를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죄책감이 느껴졌다.
몇 번이나 힘이 들었는지 가픈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는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았고 벵갈리토라의 입구 쪽에서 나를 내려줬다.
미안해서, 아니 너무 고마운 나머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약속한 금액에 10루피(한국돈 250원 정도)를 더 얹어 줬을 뿐인데도 영감님은 'Thank you, Sir'라는 극존칭까지 쓰며 고개를 숙였다.

























덥고,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웠던 바라나시의 첫인상




그렇게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바라나시 중에도 메인가트라고 불리우는 다사스와메드 가트 입구에 도착한 것이었다.
다사스와메드 카트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난 좁은 길을 뱅갈리토라라고 부르는데,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하니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잔뜩 긴장해서 그때까지는 몰랐었는데 막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다시 매는 순간 현실 속으로 돌아온 느낌이 대번 들었다.
무거운 배낭의 무게만큼보다도 훨씬 더 뜨거운...아니 작열하는 태양이 내 몸뚱아리를 태울 듯이 쪼아대고 있음을 비로소 느끼기 시작했다.
이기적이고 까탈스러우며, 극성스럽기까지 한 여자의 잔소리보다도 훨씬 난이도가 높은 은 찜통더위에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정수리 끝에 와닿는 햇살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것임을 어떻게 예상이나 했을까.


미로처럼 얽힌 뱅갈리토라의 그늘진 길을 걷는데도 등에선 연신 땀이 배어나왔다.
길가에 태연하게 널부러져 있는 개들의 짓이겨진 피부를 보면서 이곳의 공기가 얼마나 많은 습도를 포함하는지 짐작이 갔다.
많은 여행자들이 가장 오고 싶어하는 여행지로 단연 첫번째로 꼽는 바라나시.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느끼며 찍을 것인가....
주체할 수 없는 물음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여행자들로 들끓는 바라나시




막 게스트 하우스 문으로 들어서려는데 한 켠에 배낭들이 쭈욱 놓여져 있었다.
바라나시를 떠나려는 단체배낭여행자들의 배낭인 듯이 보였는데, 배낭의 브랜드가 한결같이 한국의 T사社 것이었다.
이번 인도여행에서 놀랐던 게 한국 여행자들이 들고 다니는 배낭의 95% 이상은 그 브랜드의 배낭이었는데,
왠지 다양하지 못하고 몰개성적인 한국 여행자들의 여행습관이 그대로 배낭에 담겨 있는 것 같아 아쉬웠다.
한 마디로 자기만의 고유한 여행 색깔이 없다는 말과도 같아서 왠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주일 이상을 한국인이 거의 없는 라다크(물론 육로로 접근하기 힘든 시기라서 더욱 그랬겠지만) 지방만 돌아다니다가
델리나 바라나시, 아그라 등의 이름있는 여행지로 돌아오니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여행자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곳은 어김없이 한글로 쓰여진 식당이나 한식(또는 비스무리한) 식당들이 즐비해 있어서 더이상 놀랍지도 않았고,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인도인들을 만나는 것도 결코 어렵지 않게 되었다.
한때 일본인들 여행자로 가득차 있던 인도의 여행지는 이제 한국인들로 급격하게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었다.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도여행 사이트에서  최신 정보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에 더이상 인도로의 여행은 낯설게 않게 되었다.


강가(갠지즈)강가로 막 내려섰을 때 나를 향해 웃으며 다가오던 한 일본인 청년이 기억이 난다.
제법 덮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나를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왔다고 하는 그는 내가 한국인임을 알자 이내 실망을  금치 못했다.

'한국사람은 많이 만났는데 일본 사람을 만나는 건 너무 힘들어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쿠미코 게스트하우스에 가보면 일본인들이 그야말로 늘부러져 있을 텐데도
이런 식으로 애기하는 걸 보면 한국여행자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아졌는 지 역설적으로 반증해주는 셈이다.
이제 인도여행은 대학생들에게 배낭여행의 또다른 트랜드로 굳건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는 무엇보다 물가가 싸다는 게 가장 큰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고 모험적인 성향의 젊은 대학생들에겐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인도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지다.
터무니없이 감성만 부추기는 류시화식의 글들이  인도여행으로의 욕구를 사정없이 자극했다면,
화려한 색감으로 도배된 수많은 인도의 사진들이 유혹하듯 사람들을  더욱 인도로 끌어들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히말라야 트래킹을 할 수 있는 네팔까지 인근에 있으니 호기로운 젊은이들에겐 그야말로 금상첨화...





한국여행자들의 획일적인 여행패턴에 대해 생각하다



물론 예전에 비해 우리의 여행 형태는 상당히 다변화되고 있고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늘어나고 있다.
인도의 전통적인 음악이나 춤을 배우는 참여형 배낭족들을 만나는 것은 이젠 바라나시에서 어렵지 않게 되었고,
리쉬께쉬 등의 명상학교나 네팔 등지의 명상센터에 입교해서 고래로부터 전래되어온 인도의 정신문화를 체험하는 사람들도 곧잘 보아왔다.
알려지지 않은 골목들의 작은 화랑들을 순례하듯 돌며 그림을 찾아다니던 여대생을 로마에서 만나기도 했고
세상의 모든 풍경을 크로키하게 위해 스케치북 하나만 달랑 들고 다니며 여행하는 남자도 만났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했다.


위에 잠시 언급한 한 브랜드의 배낭처럼 여전히 대다수 여행자들의 패턴은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몰개성화되어 있다.
모처럼 거금 들여 외국까지 왔으니 본전이라도 뽑고 가자는 심산으로 '한 도시 추가'에 열을  올리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는 게 일반적인데...
이런 성향은 주로 배낭여행을 처음하는 초보여행자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말만 배낭여행이지 루트와 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체 패키지 여행의 그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짜여진 일정과 루트대로 움직이다 보면 마음의 여유는 커녕 시선도 편협적이고 좁아질 수밖에 없어서
여행을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행한 나라에 대한 불신과 편견의 벽을 제대로 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누가 여기 좋다고 하면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다니고, 저쪽이 좋다하면 저쪽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줏대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여행은 전혀 기획되지 않은 채 일반적으로 꼭 봐야할 곳만을 맹신하듯 쫓아다니는 여행자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떠나왔음에 진정한 가치를 둔다면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문화의 한 형태겠지만,
그래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