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여행] 잃어버린 로프노르 호수의 전설을 찾아서


 

 


전날의 여정이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7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났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나니 굳어있던 근육이 스르르 풀렸다.
사막의 모래폭풍에 파묻힌 누란 왕국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말하면 왠지 거창할 것도 같지만, 주제는 스스로에게 부여하기 나름인 것 모양이다.
나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는 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단순한 명제를 안고 나는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는 편이지만 뚜렷하게 각인된 주제를 안고 떠나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저 길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늘 새롭고 편안하다는 느낌.
그것이 나를 떠나게끔 만드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때론 낯설음이 주는 어색함이 싫기도 하지만 금새 낯선 환경에 적응되어버리는 걸 보면 아무래도 여행체질이 아닌가 싶다.


사막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전부터 푹푹 쪘다.
빼곡하게 자리잡은 태양볕들이 연신 대지를 달구고 있었는데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심장까지 타들어갈 것 같았다.
느닷없이 맞게 되는 더위 쯤이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열린 창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이 후욱하고 얼굴에 끼치면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혹독했다. 


어느 시장 앞에 차를 세웠다.
위구르 사람들의 시선이 차에서 내리는 우리에게로 동시에 쏠렸다.
이름도 모르는 낯선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













시장의 입구, 챠도르를 걸친 위구르 여인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번 여행에선 꽤 많은 시간을 시장구경에 할애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런 곳에서 가장 쉽게 사람냄새를 접할 수 있는 곳이 시장이다 보니 반갑지 않을 수 있겠냐마는
함부로 카메라를 꺼내기엔 늘 부담스러운 것도 이런 재래식 시장에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긴 했지만 큰 시장은 아닌 듯 했다.
대충 한 바퀴 슬쩍 둘러보니 시장의 모양새가 한눈에 잡혔다.
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먹거리 장터.
엉성한 슬레이트로 지붕을 엮어 만든 먹거리 장터는 벌써 많은 사람들로 빼곡했다.

 






 



                                                     음식을 먹고 있는 자신들도 찍어달라며 싱긋 웃던 아저씨들.











예쁘게 만두를 빚고 있던 모녀...






 

한 사내가 내 팔을 끌었다.
언뜻 돌아보니 사내는 잘려진 양머리를 가리키며 사진을 찍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잔뜩 주눅들어 긴장했던 사진찍기가 그래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사진에 인색하지 않은 위그르인들 때문에 시장에서의 사진찍기는 의외로 즐거웠다.
암묵의 동의를 얻어 식사를 하시는 노인네들을 찍는가 하면 국수를 말고 있는 아낙의 사진도 찍었다.
인심좋은 시장의 풍경이 잔뜩 긴장한 이방인들의 모습을 푸근하게 내려놓게 했다.

 

















이곳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변두리쯤에 있는 작은 마을





사진을 인화해서 건내다 보니 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로 찍은 사진을 현장에서 바로 뽑아주는 즐거움은 위구르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동그랗게 좌판 주변을 에워쌓고 웃음소리가 하나 둘 그렇게 퍼져갔다. 
한낮으로 치달을수록 태양이 뜨거워졌다.
마을을 지나자 수목이 듬성듬성 나있는 초원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풀 한포기 제대로 없는 사막이 나타났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직사광선이 점령군처럼 당당하게 초토화시켜 버린 사막,
차에서 내릴 때마다 훅 끼쳐오는 뜨거운 바람이 아찔했다.
정수리를 타고 흐르는 햇살에  금방이라도 온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아찔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방문하고자 했던 타클라마칸 사막의 얹저리 쯤에 있는 디칸마을에 도착했다.
기온을 정확하게 재어보지는 못했지만 40도 이상을 훌쩍 뛰어넘는 폭서의 소나기 속에 빠져 있었다.
하긴 이곳이 그 지독한 타클라마칸 사막의 얹저리 쯤이라고 하면 그 정도의 기온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마치 그 얹저리에 서 있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사막 위의 신기루처럼 내 존재가 흐느적거리며 불투명해지고 있었다.







'니들이 고생이 많다.'

세상의 가장 곳 중의 하나인 타클라마칸 사막에 와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에 가도 당나귀는 늘 존재하고 있었다.
당나귀의 슬픈 눈망울 바라보고 있으면 늘 가슴 한 켠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다.
50도가 육박하는 이 땡볕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당나귀에게 그렇게 한 마디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렇게 마쟈르(무덤)가 있었다.
마쟈르 너머로는 넘실대는 사막의 망망대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누란왕국의 전설을 찾아 떠난 스벤하딘의 힘겨운 여행경로가 너무 아득해서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다.








제법 푸른 실록으로 덮혀있는 오아시스 마을 디칸.
이곳에서 스벤하딘은 사라진 로프노르 호수의 누란왕국을 찾아서 탐험대를 조직하게 된다.
벌써 100여년 전의 일이다.

실크로드를 함께 여행했던 '자유여행가'님이 작은 사막을 가로질러 포도를 말리는 저장고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무성한 햇살이 빠짐없이 사막의 곳곳을 불태우며 비추고 있는 낯선 풍경.







듬성듬성 놓여있는 마쟈르(무덤) 건너편은 육중한 사막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나마 선글라스 때문에 눈은 시원했지만,
드러내놓은 내 살갗을 태우는 강렬한 햇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분명히 고역이었다.










 



                누란왕국은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5세기 전후로 실크로드 상에 실제로 존재했던 소왕국. 
                하지만 오랫동안 유적과 유물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전설속의 잊혀진 왕국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었는데, 
                1929년 신비의 호수 로프 노르(Lop Noir)를 찾던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하딘에 의해 유적이 발견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난다. 
                2천년 전의 누란왕국은 실크로드의 시점인 둔황을 출발해 오다보면 만나게 되는 오아시스 왕국으로 
                루프 노르 호수를 끼고 있어서 대상들에게 물과 식량, 필수품들을 보충할 수 있는 거점으로 
                중국의 변방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부와 문명을 축적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번성하던 누란왕국은 어느날 역사의 무대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누란왕국은 오랫동안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그저 전설 속의 '신비의 왕국'으로만 알려져 왔다. 
                누란왕국이 왜 멸망했는지, 뒤에 왜 국명을 션션국으로 바꾸게 되었는지 대한 어떤 기록도 남겨져 있지 않다. 
                다만, 오늘날의 연구로 타림분지에는 아리안계 혹은 이와 유사한 종족이 살았고, 또 일부에서는 터키족이 살았다라고 한다. 
                오아시스의 부에 관심이 많았던 흉노의 끊임없는 공략 또는 북위의 침공으로 멸망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타림분지의 모래퇴적으로 인해 자연하천이던 로프 노르호의 이동과 함께 운명을 달리했다는 설도 있다. 


                후일 법현(399년에 인도에 들어간 중국 동진 때의 스님)이 선선을 지날 때엔 이곳은 이미 '죽음의 땅'이었고 
                다시 스벤 하딘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는 모래 속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다시 말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누란왕국의 실체를 쫓기 위해 결성된 스벤하딘의 탐험대가 낙타와 물과 식량을 구입하고  
                그들의 길 안내를 해주고 도와줄 사람들을  쿠무타크사막의 한 곳에 위치한 체르첸 마을에서 충당하고 조직했다고 한다.
                하지만, 죽음의 땅이라고 불리우던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가면서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겪게 되는데,
                그 와중에 스벤하딘과 스벤하딘의 목숨을 구해준 안내자였던 위구르 남자만이 유일하게 생존하게 된다.
                스벤하딘의 목숨을 구해준 위구르 남자의 후손이 여전히 '디칸'이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
                역사 속의 퍼즐을 짜맞추 듯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디칸 마을의 대아홍인 아한 하심.
그분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서 끊임없이 셔터를 눌렀다.  
















디칸마을의 좁은 골목을 거닐다 우연히 들어간 대아홍 아한 하심의 집.
거동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던 선한 인상의 아한 하심은 그렇게 낯선 이방인을 반겼다.
머나먼 한국에서 왔다는 우리를 향해 기꺼이 자리를 내주었고,
시원한 수박을 내주었으면 셔터를 누를 기회를 제공해 준 그와 그의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이방인의 카메라에 환한 미소로 화답해 주는 아한 하심.
그의 선한 미소로 말미암아 더위마저도 잊게 만들었다.



 




그의 아내와 함께 늙어가는 두 딸들. 그리고 손자











무성한 햇살이 사정없이 할퀴고 있는 뜨락과는 대조적으로,
차양막이 둘러쳐져 있는 그늘은 서늘할 정도로 시원했다.
습기를 머금고 있지 않은 사막기후의 특징 때문인지 그늘에만 앉아 있어도 기온차가 뚜렷하게 났다.
 






뭔가를 건내고 있는 이 분은 누란왕국을 찾아 떠난 스벤하딘이 이끄는 탐험대가
타클라마칸 사막의 뜨거운 폭풍에 대부분 몰살하게 되었는데, 이때 스벤하딘을 살린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사진 속 남자의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어쩌면 역사의 단서를 찾는 가장 기본적인 일은 그렇게라도 실마리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종이에 그려진 것은 스벤하딘을 구했다는 영감님의 조부 초상화.





"아니, 이 사람들이 우리를 보려고 한국에서 왔단 말이지?"

그녀는 중국어를 아예 못한다고 했다.
사막의 중간에서 일평생을 보냈던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언어는 바로 위구르어.
그녀는 스벤하딘을 도운 위구르인 손자의 아내였던 것이다.

'약시스무시스'라는 인삿말에 유난히 뜨겁게 호응하는 그녀.












스벤하딘을 도와 사라져버린 누란왕국의 실체를 비로소 세상에 알리게 한 현지 안내인의 손자.  아야 하임.
모스크에 예배드리러 가던 전, 그의 모습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