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기차에서 벌어진 가방 도난사건





 

돌아다니기엔 날이 너무 더웠다.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던 새벽녘을 제외하곤 태양은 연일 델리를 달구고 있었다.
헤이즈가 낀 듯 뿌연 델리 시내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매캐했고,
거리를 나서자마자 달라붙는 릭샤꾼의 극성스런 호객행위도 징그러웠지만,
그보다는 느닷없이 다가와서 손을 벌리며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거지아이들의 극성스러움도 만만치 않았다.


바라나시행 열차(3A)를 예매하자 그렇지 않아도 여유롭던 시간이 한결 더 여유로워졌다.
하릴없이 빠하르간지를 쏘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태양이 절정에 이르는 한낮엔  한국식당 '쉼터'에서 시원한 인도 맥주 '킹피셔'를 마시며 더위를 달랬다.

델리에서, 그것도 빠하르간지 주변만 3일째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다 보니 일대 지리는 환하게 꿰뚫을 정도였다.
인도여행의 시작점이자 끝점이라 부를 수 있는 이곳 빠하르간지에서는 유독 여행자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라다크에서는 한 명도 볼 수 없었던 한국인 여행자들도 이곳에는 넘쳐났는데 먼저 인사를 건내는 것조차 이제는 어색했다.
아주 오래된 여행자처럼 빠하르간지 골목의 귀퉁이에서 시도때도 없이  늘어져서는 짜이를 마시다 보니,
꽤 많은 젊은 한국 배낭족들과 말을 트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시나브로 소식통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한국을 떠나왔으면서도 희안하게 여행하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는 스펀지처럼 귀에 빨려들어왔다.




바라나시에서 델리로 오던 한 여대생이 기차(SL급) 안에서 여권과 비자, 항공권, 현금이 든 가방을 통째로
도둑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남 애기같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다.
호텔입구의 소파에서 상기된 얼굴로 한국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던 그녀를 잠시 지켜보기는 했지만,
상황은 의외로 심각해서 예비 여권과 비자를 만들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꼼짝없이 델리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함께 여행한 길동무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둬 다행히 숙소와 끼니 문제는 해결했다고는 하지만,
순간적인 방심으로 빚어진 엄청난 결과는 그녀가 계속 여행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한 셈이었다.

보통 배낭여행자들은 장거리 이동을 하기 때문에 침대열차를 많이 이용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이용하는 등급이 바로 SL급이다.
쎄컨드 슬리퍼(Second Sleeper)의 약자로 가격이 저렴한데다 예약을 하면 지정침대도 제공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하지만,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과 수많은 잡상인들과 사람들이 들락거리기 때문에 도난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상태라고 한다.


여대생이 도난을 당한 시점은 기차가 막 델리에 도착해서 내릴려는 직전에 발생했다.
주변에는 한국인 동행자들도 꽤 많았는데, 각자 자신의 짐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그녀의 작은 가방이 언제 사라졌는지 기억도 해내지 못했다.
경황이 없는 틈을 타서 노련한 도둑이 슬쩍 가져간 듯한데, 문제는 돈과 여권(비자) 뿐 아니라 소중한 여행의 추억이 담긴 디카까지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결국 그녀는 한국 대사관에 임시여권을 신청했고 인도 공관에서 임시 비자도 발급받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추방형식으로 쫓겨나듯 인도를 떠났다.
잠시의 방심이 불러온 엄청난 결과는 그녀의 여행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고 그녀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카메라와 촬영장비,노트북 등 전자제품을 유독 많이 들고 다니는 나는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이 보장된 3A급 이상의 기차만 고집했다.
사실, 도난을 맞게 되면 돈이나 여권 등 귀찮은 일거리도 문제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추억을 잃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가슴 아팠다. 거기다 소중한 여행 추억이 담긴 카메라의 분실을 당한 적도 없지만, 애써 떠올리기도 싫기 때문이다. 돈 조금 절약하기 위해서 SL급 기차를 타는 것은 내겐 무모한 도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캐나다 여행자 칼...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인도 현지인인 줄 알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가곤 했던
빠하르간지의 유명한 라씨집













델리에서 만난 길동무들과 함께 먹은 탄투리치킨 집의 종업원...
우리가 해치운 탄두리치킨이 접시에 담겨져 나오고 있다.









기억하나요?
스팟 호텔 옥상에서 나눴던 행복한 여행의 뒷풀이 시간들을...
그 아련한 시간들이 문득 그립네요. 

그날, 델리의 밤하늘에도 별이 떠 있음을 보았을 때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길동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 델리에서 만난 여행의 길동무들과 함께...

 




 







 

 

 

 

 

 

델리에서 아그라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도난 사고가 일어났는데 하필 그 자리에 나도 끼여있었다.
도난을 당한 사람은 아그라까지 잠시 동행이 된 우리(남자 셋, 여자 하나) 일행 중 젊은 아가씨였다.
인도여행을 온 지 겨우 3일밖에 되지 않는 풋풋한 여행 새내기였던 그녀는 델리에 머물면서 저돌적으로 여행을 다녔다.
비 오는 날 새벽, 잠시 골목에 앉아서 짜이 한 잔을 마시고 있을 무렵 작은 배낭을 매고 우의까지 뒤집어 쓴 채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녀를 처음 보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가이드북에 일일히 가야할 유적지를 체크한 다음 하루종일 붙별같은 땡볕 속을 쉼없이 돌아다녔다고 했다.
손톱만큼도 여유로움을 찾을 수 없는 그녀의 여행이 무척이나 답답해 보여서 쉬엄쉬엄하라며 잘 하지 않는 조언까지 늘어놓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이미 배치된 여행 스타일을  몇 마디 말로 설득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아는 탓에 애써 말을 아꼈다.


유럽여행을 그런 식으로 몇 번 다녀왔다는 그녀는 전형적인 찍고 턴 스타일의 여행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나마 여자 혼자 여행온 것이 대견해서 지독한 더위에 빨갛게 상기된 그녀를 데리고 빠하르간지의 유명한 라씨(일종의 요구르트)집으로 데리고 왔더니
열악하고 지저분한 그곳의 환경에 경악을 금치 못하더니 마지못해 라씨잔을 받아 마른 목을 축이기도 했다.
하긴 먼지가 풀풀 날리고 쉼없는 릭샤들의 경적소리, 허멀건 인도인들의 눈빛이 쉼없이 떠돌아다니는 빠하르간지에서
달콤한 커드(라씨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원재료) 위로 수북히 날라드는 파리떼들과 그것을 쫓는 주인장은 딴 사람이 마신 컵을 대충 씻고는
그 잔에 다시 라씨를 담아 건냈으니 한국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건에 먹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서 도난 사고가 일어났다.
         나는 당일치기로 잠시 다녀올 예정이서 배낭은 호텔에 그대로 놔둔 채 카메라 가방만 들고 갔었고,
         그녀와 또 다른 남자는 아그라도 이동한 뒤 다른 도시로 넘어갈 예정이어서 모든 가방을 들고 기차에 들고 탔던 것인데
         선반에 올려둔 그녀의 작은 가방이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가방 안엔 귀중한 여권(비자)이며 카메라, 현금 등은 들어있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빽빽하게 정보를 적어놓은 가이드북과 
         값비싼 고어텍스 재질의 오바트라우저, 입맛이 없을 때 직접 조리를 하기 위해 가져간다는 한 번도 사용않은 버너가 들어있었다고 했다.

         가방의 행적을 찾아 몇 번이나 기차 칸을 오가며 찾아봤지만 이미 사라진 물건은 결코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곳 인도에서의 불문율.

         잃어버린 물건은 빨리 기억 속에 지워버리는 게 남은 여행을 위해 정신 건강에 좋다는 말로 달래보기는 하지만 그 여운은 꽤 오래갈 것처럼 보였다.

         인도여행의 통과의례를 겪는 과정일 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그 희생은 너무 값비쌌다.

         두 도난 사건 모두, 창졸간에 일어나고 말았다.
         이런 도난사건의 유형은 기차에서 가장 많이 벌어지는 형태인데, 자신의 짐은 철저히 자신이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보여준 것이다.


          예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일단 짐의 수를 가급적 줄이는 게 가장 급선무다. 2개 이상의 짐은 솔직히 들고 다니기도 그렇지만, 신경을 기울이기에도 부담스럽다.    
         아무리 짐이 많다고 하더라도 가방(또는 배낭)의 수를 늘리기 보다는 크기를 고려해서 제대로 들고와야 한다.
         그리고, 자물쇠가 연결된 와이어를 항상 준비해서 다녀야 한다. 
         인도 현지인들도 기차에 타면 와이어로 자신의 짐을 묶는데 행여 일어날 지 모르는 도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차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