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카라코람 하이웨이 풍경들

 






길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눈빛에선 그리움이 묻어났다.

코발트색의 짙은 그리움같은 눈빛들이 내 마음을 끌었다.

그들에게 다가갔고, 그들과  눈빛으로 무언의 인사를 나눈다.

비록 가진 것 없는 궁색한 살림살이를 가진 그들이지만 그들의 환한 웃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고약한 욕심덩어리로 디룩디룩 뭉쳐진 내 욕망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들의 웃음은 그래서 밝고 환하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우리들이 신기했는지 사람들이 마을에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신기한 듯 카메라를 바로보는 아이들과 애써 무덤덤한 아줌마...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험준헀던 국도였던 이곳은

이제는 포장이 완료되어 카라코람 고속도로(KKH)라고 불리운다.

중국과 파키스탄의 전략적인 또는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이 길은,

혜초스님이 인도에서 건너올 당시에만 해도 사람과 말이 겨우 지나다닐 수밖에 작은 소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카펫을 말리는 건조대(?)로도 활용이 된다.
 

 

 

 









KKH 여행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황량함'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것.
그나마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초원에 푸른 잔디가 돋아나서 한껏 푸르름을 자랑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그야말로 황량함의 별천지였다고 한다.










황량한 산허리마다 내려앉은 구름의 그림자들이 인상적이었다.




 






 





 

 희안하게도, 사람이 있는 서 있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비록 그곳이 황량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KKH라고 하더라도,

낯선 길 위엣 만나는 사람의 모습은 왠지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온다.

 

그는 홀로 어디를 가는 것일까.

 


















 

그 길에는 초원만 있는 게 아니다.

조금이라도 초원을 벗어나면 금새 황량하고 척박한 사막이 이어진다.

키낮은 사막풀들이 듬성듬성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그 낯선 땅.

당나귀를 탄 남자가 두 마리의 낙타를 묶어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하필이면 그 때...

왜 그 동요가 생각이 났던 것일까.

 

 

 

 


















궁거얼산 정상의 엄청난 구름띠...
아마도 저곳엔 폭설이 내리지 않을까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대단해보였다.










 산에 드리운 구름의 그림자가 시선을 끌었다.

초원의 끝자락에 위치한 곤륜산맥의 헐벗은 낮은 봉우리들...

 

 


















마을 뒷편 만년 빙하가 닿을 것처럼 가깝게 내려와 앉았다.








 유목민의 땅, 파미르 고원.

날랜 산양들이 길을 건너고 있는 그곳의 풍경들이 이젠 낯설지 않다.

길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문명과 문명을 연결하며,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지난한 역사와 함께 하고 있었다.

비록, 전설은 사라지고 날세운 자본들이 끊임없이 밀려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곳엔 전설이 잔설처럼 남아있었다.

 

 

 











파미르고원의 끝자락...
푸른초원이 시작되는 그곳엔 어김없이 유목민들이 야크떼를 몰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황량함의 정점이라 불리우는 KKH가 그다지 황량스럽지 않게 느낀 건...
어쩌면 가끔씩 나타나는 푸른 초원과 그곳에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낯선 곳에서도 사람은 산다?
도저히 살 수 없는 그런 환경, 그런 곳에서도 사람은 산다.
나더러 이런 곳에 살아라고 강요하면... 몸서리를 치며 완강하게 거부하고 말 그런 땅에도 사람이 산다.
때론 그런 그들의 삶이 믿기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내색없이 살아간다.








따뜻한 담벼락에 몸을 녹이고 있는 할머니와 손녀.
낯선 이방인의 느닷없는 출현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단지 머릿속으로만 상상해 오던 KKH는 범접할 수 없는 세상의 끝이나 다름 없었다.

거칠고 척박하며 용이하지 않은 접근성 때문에 고립된 오지, 외로운 눈빛을 가진 사람들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잿빛으로 낮게 드리운 하늘 때문에라도 그랬겠지만 나무 한포기 없는 삭막한 산악 풍경들이 이어지자 상상은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

을씨년스러운 하늘만큼이나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은 그렇다치더라도 컨트라스트가 두드러진 흑백 느낌의 사진이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그렇게 그리움의 땅으로 들어섰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엉망으로 꼬인 사념의 덩어리들을 잠시 망각의 저편으로 보낼 수 있는 미지의 땅.

서늘한 바람이 불고 현기증처럼 아련함이 연결되는 그 길 위에 서서...

잃어버린 내 감성을 그리워했고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뒤틀려버린 신산스러운 삶의 단편들을 비꼬았다.

 

나는... 아니  내 몸은 살아있었다.

도회의 안일한 삶에 지친 내 몸이 거칠고 척박한 바람에 서서히 반응하고 있었다.

핏톨 속을 흐르는 뜨거운 혈류의 흔적을 느꼈고 용광로처럼 뜨겁게 들끓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었다.

획일적인 일상의 흐름 속에 이미 뻣뻣하게 굳어 버린 불감증같은  감성들이 조금씩 굳은살의 허물을 벗는 게 느껴졌다.

차마 꿈에서도 그립던 KKH, 바람의 원류가 시작된 땅으로 들어선 기분은 흥분에 가까왔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변함없이 비슷한 일들로만 채워지던 일상의 중압감에서 마침내 벗어났다는 희열이기도 했다.

익숙하고 편안한 삶을 벗어나기 위한 통과의례는 어느 정도의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수반하기는 했지만 거의 미열 수준에 불과했다.


  

- 그 날의 여행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