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델리의 빠하르간지에서 만난 축제행렬


 








빠하르간지의 '에베레스트'라는 네팔인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어디선가 요란한 음악소리가 멀리서 들리는가 싶더니 금새 식당을 가로지르는 대로변까지 펴졌다.
뭔가 왁자지껄한 축제가 시작된 것임에 틀림없다.
새로운 흥분이 온 몸을 휘감았다.


이미 레에서 라마교의 석가탄신일 법회에 참가한 전례가 있던 터라,
그 짜릿한 축제의 현장을 놓칠 수 없다는 불같은 사명감(?)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카메라를 들고 햇살 쏟아지는 대로로 달려나갔다
오월의 뜨거운 햇살이 작열하는 빠하르간지의 대로변은 그야말로 축제가 한창이었다.
깔끔하게 제복을 다려입은 밴드들이 요란한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화려한 색감의 꽃들로 치장한 차량들이 델리역 방향으로 느릿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특유의 터번과 멋스럽게 기른 긴수염, 커다란 덩치, 왼손의 철팔찌로 대표되는 시크교도들이었다.
그들이 가진 강렬한 카리스마 때문에 좀처럼 다가가기 쉽지 않았는데, 물 만난 고기를 만난 것처럼 좋은 기회를 얻은 탓에 나는 신이 나서 셔터를 눌렀다.


서스럼없이 그들에게 다가가도,
때론 느릿하게 다가오는 그들의 행렬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어도 누구 하나 내치는 사람이 없었다.
내 육안으로 바라볼 땐 한없이 촌스럽게 다가오던 그런 색감들이 막상 카메라 안에선 빛이 났다.
인도는 그야말로 색감의 잔치같은 느낌이었다.
독특한 파란색과 주황색, 분홍색, 노란색 등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소화해낼 수 없는 화려한 색감들이 다투어 향연을 펼치고 있는 그런 느낌...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그 색감의 가치는 더욱 빛이 났고 진가를 발휘했다.
색감에 취한 나머지 흥겨운 음악에 나도 모르게 어깨춤을 덩실덩실 출 정도였다.



 

 


 

 

 

 







 

 

△ 생生 장미꽃잎을 일일히 뜯어서 퍼레이드를 하는 그들의 차량에 뿌리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  네팔의 결혼식에서도 비슷한 제복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를 만난 적이 있는데,

      빠하르간지의 시크교 퍼레이드에서도 신나게 연주하는 밴드를 만났다.

     행사의 조미료처럼 즐거움을 배가시켜주는 그들의 공연...

      낯선 이방인의 카메라 앞에 더욱 열정적으로 이어지던 그들의 실력이 단연 돋보였다.

 














 

 

 

 

 

 

△ 화려한 색감의 꽃으로 치장한 차량 행렬의 앞에는 이렇게 맨발로 걸으며,

    행사의 진행을 맡은 시크교도들이 앞장을 서고 있다.

    특유의 터번과 긴 수염, 커다란 덩치, 왼손에 찬 철팔찌로 인해  선뜻 그들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  햇살이 너무 강렬한데다 푹푹 찌는 폭염이라 구경하는 사람들조차 잔뜩 인상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긴 행렬이 다 지나갈 때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치 고행같이 긴 이동을 기원이라도 드리려는 듯, 말 없이 축복하고 있다.

 

 












 

 



 

△ 퍼레이드에는 일반 차량만 동원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오토릭샤도 한껏 멋지게 치장해서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 시크교도들에겐 다섯가지의 계율이 있다. 이른바 5K

① Kesh  : 머릿카락을 자르지 않는다.(터번을 두르고 다님)

② Kirpan  : 크리판이라 불리는 칼을 차고 다닌다.

③ Kada : 철팔찌

④ Kangha : 빗

⑤ Kaccha : 무릎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느슨한 바지

 

 


















 

















 

 △ 사진을 찍고 있는 내 앞을 지나며 익살스런 표정을 보이는 젊은 시크교도

 

 

 

지나가는 어떤  시크교도가 내게 물병을 건냈다.
아니, 구경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는 물병을 건내고 있었다.
사탕과 과자가 담긴 작은 상자를 건내는 사내도 있는가 하면 바나나를 건내는 사내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뒤로는 한 웅큼의 거지 아이들이 손을 벌리며 뒤따르고 있었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하는 가장행렬은 단지 '그들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나눔이 있었고 공유가 있었다.
무료로 작은 음식을 나눠주는 좌판엔 모여든 많은 사람들로 아비규환이었다.
파리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길게 팔을 뻗고는 애원을 하고 있었다.
때론 애처러워 보이면서도 이런 축제가 아니면 어디서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오히려 흥이 났다.
금새 땀으로 흠뻑 젖는 습도많은 빠하르간지의 땡볕 아래에 서서 젊은 시크교도가 나눠준 시원한 생수를 아주 달게 마셨다.


옆에서 구경하는 인도인에게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더니
'시크교 창설 300주년 기념 퍼레이드'라고 하면서 '이런 귀한 장면을 보게 된 당신은 행운아'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들의 행렬은 델리에서 시작해서 시크교의 성전이 있는 암리차르의 황금사원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암리차르까지 가본 적은 없지만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인도라서 그 길이는 상상이상으로 아득하게 느껴졌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행색의 이면엔 그만큼의 고통이 따를 게 분명했다.
어쩌면 종교라는 그들의 신념과 믿음이 그런 고통까지 극복해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게 신념과 믿음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내세울 게 없으니 당연히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종교인들의 신념과 믿음은 때론 목숨보다 귀중한 것이라서 어쩌면 고행 쯤은 거역할 수 없는 행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비록 혹독한 더위에 벌써부터 지쳐가고 있는 노인의 모습도 보였지만 그게 그들의 삶의 행로일테고 숙명과도 같은 것일테니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밴드쪽으로 카메라를 돌리자 다소 지친 기색이 역력하던 밴드들의 표정이 어느새 환하게 되살아났다.
늘어지던 음악도 금새 생기를 찾앗다.
부원들은 내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면서 마치 경주를 하듯 역동적으로 연주를 펼쳐갔다.
단지 카메라만 그들을 향했을 뿐인데도...그들의 음악은 전에 없이 들떠 있었고 신명나 있었다.
사진에 유독 집착하는 인도인들의 재미난 모습이 아닐까.
그들에게 OK 싸인을 보냈는데도 그들의 연주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고, 애써 참았던 웃음을 보이며 박수를 보냈다.

 








 

 



 

△ 느릿하게 다가오는 차량 때문에 그들의 행렬 앞으로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누구하나 제지하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오히려 어색하다.

 

 

 

 

 







 


 

△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꽤나 지쳐있다.

고행같은 그 먼 길을 어떻게 가려고.... 

 

 

 

 

 

 

 

 

 

 

 













 

 

△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손을 들어 애원해보지만,

짜증 섞인 남자의 입에는 냉랭한 욕설만 흥건하게 흘러나올 뿐이다.

 

 

 

 

 

 

 

 

 

 

 

 

 

 

 

 

 

 

 

 

 

 

 

 

 

 

 

 

 △ 뜨거운 빠하르간지의 더위에 벌써부터 지친 악사들.

카메라를 그들에게 향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생기있는 연주가 시작된다.

 

 

 

 

 

 

 




 

 

 








 

 

△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누군가 손을 끌었다.
    돌아보니, 백발이 성성한 영감님이시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가족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이런 기분좋은 제의에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나로서는 렌즈를 갈아끼우기까지 하면서
    그들의 행복한 순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는다.
    영감님의 표정이 참 선하시다.
    해맑게 웃고 있는 계집아이의 표정도 참 앙증맞다.
    그들에게 찍은 사진을  몇 장을 인화해서 건냈다.
    그 놀라워 하는 표정...

 

델리에서 처음으로 '던야밧'이라는 감사의 인삿말을 들었다.
꼭 '고맙다'라는 인삿말을 들으려고 사진을 찍어주진 않지만, 그래도 그런 인사는 기분을 상승시킨다.

 

 

추신> 시크교도 창설 300주년은 1999년 4월 20일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