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인 쿤자랍고개(중국명 : 홍치라포)를 가기 위해서는 타쉬쿠르간 검문소에서 퍼밋을 받아야 하는데
통과하지 않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출입을 허락할 수 없다면서 우리를 돌려보냈다.
전직 군인 출신인 위구르인 운전기사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퍼밋을 받긴 했지만
이 먼 곳까지 와서 하마터면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이 있는 쿤자랍까지 가지도 못할 뻔 했다.
1시간 반의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퍼밋이 떨어졌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어제와 똑 같은 풍경이 계속해서 차창 밖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황량한 땅, 거칠고 높은 산자락마다 한웅큼 쌓여있는 눈, 푸른 하늘과 그 속을 떠다니는 구름,
양떼와 낯선 얼굴의 카자크 목동, 드문드문 나타나는 사람의 집들…
그나마 이 지역은 어제와는 달리 마을이라도 자주 나타나니 편안함이 한결 더했다..
비록 황량하긴 했어도 녹색을 띈 작은 초원도 곧잘 나타났다.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파미르 고원의 일부라고 하니 그 느낌만으로도 새로웠다.
초원 너머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카라코람 산맥이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을 내뿜었으며
태양은 눈부셨고 바람은 춥지도 덥지도 않을만큼 딱 적당했으니 여행길은 어제보다는 한결 가볍고 유쾌했다.
망원렌즈를 꺼내 산정상을 살펴보니 마치 눈 앞에 있는 듯 가깝고 생생하게 다가왔다.
눈에 띄는 타지크인들의 유르트(천막) 근처에 차를 세웠다.
두 동의 유르트와 작은 벽돌집이, 넓은 초원 위에 덜렁 위치한 곳.
나이드신 여자 세 분과 아이티를 벗어나지 못한 참한 색시와 쓸쓸한 웃음이 귀여운 사내 아이,
그리고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사람에게 강아지 한 마리와 사람에게 치근대기 좋아하는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몇 마리의 거위와 초원에 풀어놓은 양과 소들이 낯선 이방인들의 느닷없는 방문을 반겼다.
그들의 소박한 살림살이가 들어있는 유르트를 살펴보니 몽골의 게르와 별반 다르지 않게 소박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을 여행하고 사람의 사진을 담는 건 참 재밌는 작업이다.
그들의 즐거워하는 표정을 바라볼 때면 내 가슴까지 훈훈하게 데워지면서 따뜻해진다.
사진이 귀한 오지인만큼 사진에 대한 생각은 절실했으리라.
유르트로 들어간 여자들은 제각기 화려한 색깔의 모자와 스카프를 두르고 나왔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아낙들이 포즈를 취하면 우리들은 우르르 몰려가 사진을 찍었다.
몰려든 사진사들의 카메라 세례가 부담스러운지 어린 새 색시는 살짝 부끄러운 포즈를 취하기도 했지만
인화된 사진을 받아든 그녀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표정들이 얼굴에 가득했다.
기념품을 팔기 위해 주머니에서 귀한 돌 몇 점을 꺼내놓던 아낙들은 이내 화젯거리가 사진으로 돌아가버렸는지
나중에는 나름의 포즈를 취했고 받아든 사진을 보면서 활짝 웃으며 덕담을 주고 받았다.
그녀들의 즐거움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는 대목이었다.
날이 너무 좋았다.
환하게 탁트인 시계는시원하리만치 청량했지만 압도당할 황량하게 헐벗은 설산들을 목도하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끝없이 설산들이 펼치졌고 듬성듬성 타지크인들의 유르트와 사각형의 벽돌집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풍경이지만 그 고운 하늘빛을 담을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푸른 하늘빛과 새하얀 설산들이 만들어내는 이 황량함의 극치라니...
도저히 살기 힘들 것 같은 자연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곳을 생활터전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조화가 신비롭기까지 했다.
이런 곳을 다닐 때마다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위대하다'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세계가 통신과 미디어로 묶여지는 이 시대에도 예전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복식을 그대로 갖춰입고전통의 문화를 간직하면서도 타지에서 불어오는 거센 문명의 역풍 앞에서도 굳건하게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모습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제 자동차는 구불구불한 언덕배기를 오르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던 카라코람 산맥의 설산들이 같은 눈높이에 놓여져 있었다.
어느새 4,600미터의 해발고도를 바득바득 오르고 있었다.
귀가 멍해지더니 뻥하고 뚫렸고 호흡이 점파 가파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몸의 반응은 보이질 않았다.
예전만큼 고산증으로 힘이 부대끼지는 않았지만 고산으로 올라왔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실감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중국군 국경 검문소에 다달았다.
22년 동안 중국군대에 복무했던 위구르인 운전사 덕분에 조금은 어렵긴 했지만 마침내 도달한 이곳.
그래서 감회는 남달랐는 지도 모르겠다.
간단한 서류절차를 끝낸 우리는 젊은 중국군 한 명을 차에 태우고는 파키스탄 국경이 접해 있는 쿤자랍고개(홍치라포)로 이동했다.
눈부신 설산의 풍경이 펼쳐져 있고 푸른 하늘을 수놓은 듯 둥둥 떠다니는 구름들,
그 코발트빛 하늘 색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몇 걸음 옮길 때마다 거친 호흡이 일어서 한때 힘겨워 하기도 했지만 그런 간단한 장애 때문에 아름다운 풍경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 때는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며, 그토록 오고 싶었던 카라코람 하이웨의 중국쪽 영역의 끝.
비록 반 밖에 안되는 성공이긴 했지만 그렇게 중국측 카라코람의 끝에 서 있었다.
파키스탄 너머로 바람이 불어왔다.
차가운데다 거칠기까지 한 바람은 그렇잖아도 검게 그을린 내 얼굴을 할퀴고 지나쳤다.
그건 자유를 갈망하는 또다른 내 마음 속의 바람이었으리라.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곳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넘어가야 했지만,
탈레반의 위협이 가해지고 끊임없이 폭탄테러가 일어나는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길을 한국정부는 막아놓고 있었다.
물론, 조금 무리를 해서 카쉬카르에서 버스를 이용해서 카라코람을 넘고, 파키스탄 소스트에서 비자를 받는 길도 있긴 했지만
아름다운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이미 유보해버린 뒤였다.
비록 반만의 성공이긴 하지만 이곳에 섰고 풍경의 아름다움에 한껏 도취되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이고 즐거움이었다.
쿤자랍패쓰는 우리 말로 '피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험난하고 위험한 고개였다.
동서로 연결되는 실크로드가 아주 중요했던 시절에는 수많은 산적과 도둑들이 곳곳에 출몰하여
이곳을 지나는 대상이나 사신들을 습격하여 죽이거나 약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인도의 위협(?)에 긴요한 협력이 필요했던 파키스탄과 중국 정부는 수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10여년동안 2차선 도로를 뚫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천여명에 육박하는 양국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과히 '피의 계곡'이라 할만 했다.
지금도 산사태 등의 자연재해 등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수십명에 달하니 여전히 악명은 계속 이어지고 셈이었다.
파키스탄 쪽에서 오토바이 한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2명의 파키스탄 군인들이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파키스탄 군인들은 우리와 함께 온 젊은 중국군과 친하게 악수를 나눴고
곧이은 우리의 모델 제의에도 흔쾌히 수락하는 것을 보면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중국 군인들은 달랐다.
군기가 바짝 든 중국 군인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는조차 싫어했다.
거만한 점령군의 모습이 자꾸 연상되어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중국군이 대부분 한족漢族 출신인 것을 보면 신장지역의 중국화를 공고히 하려는 중국 정부의 저의를 엿볼 수 있다.
그런 반면, 파키스탄 군인들은 아주 친근하게 우리를 대했고 연신 미소를 잃지 않았다.
두 나라 군인들에 대한 상반된 느낌은 어쩌면 내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머지 않아 중국 군인들의 잔인하고도 악랄한 이민족 탄압은 우루무치 사태로 인해 현실화되고 말았다.
서북공정으로 신쟝지역을 중국의 역사 속으로 완벽하게 편입시키고 그 지역을 중국의 식민지화하려는 저의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돌아오는 길 내내 차안에서 잠만 잤다.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의 무거움을 도저히 극복할 수가 없었다.
잠에 흥건히 곯아 떨어진 채 잠의 나락으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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