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여행] 메마른 토욕구의 풍경 속으로



 

더위가 절정에 머무릴 시간에야 토욕구에 도착했다.
대지는 금새라도 바짝바짝 타들어갈 듯 뜨겁게 끓어 오르고 있었다.
썬크림을 얼굴이며 목 뒷부분에 덕지덕지 바른 뒤 선그라스와 모자 등의 도구로 겨우 태양을 가릴 준비를 하고 몇 걸음 나서는데,
정수리 끝에서부터 와닿는 햇살이 너무 강렬해서 이내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인위적으로 어설프게 치장한 관광지 쯤이라고 생각하며 별 기대없이 계곡 속으로 내려서는데 위그르인들의 소박한 흙집들이 나타나니 오히려 반가웠다.

날이 너무 더운데다 강렬한 햇살 때문에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고 좁은 골목엔 흥건한 햇살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렇찮아도 바짝 마른 돌담벽은, 강렬한 햇살이 닿으니 금새라도 으스러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사람의 정적이 끊긴 마을은 마치 폐허처럼 쓸쓸하게 느껴졌다.
햇볕 가득한 날에 느끼게 되는 쓸쓸함은 그야말로 참혹할 지경이었다.








세상을 바짝 태워버릴 듯이 강렬하게 쏟아지는 불볕 더위 속에서도
그들의 집 안은 의외로 서늘했다.





인적을 찾아서 작은 집 안을 기웃거리다 그늘진 마당 안으로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의 마음으로 불쑥 들어섰다.
건조한 태양만 가득한 바깥 풍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내부는 의외로 시원했다.
1층은 가축의 우리로 사용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2층에 거주하는 것 같은데 마당에만 들어서도 서늘함을 느낄 정도였다.


이곳이 덥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후텁지근한 습도는 없기 때문에 그늘에만 들어서도 땀이 식을만큼 시원했다.
한 아낙이 맨발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는데 낯선 이방인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입버릇처럼 '약시스무시'라며 위그르인들의 인삿말을 건내니 조용히 웃으며 돌아볼 뿐이었다.
그리고 보면, 시골에서 만나는 위구르인들은 이방인에게 꽤나 친근한 편이었다.














마자촌의 오래된 오래된 모스크







이슬람의 동방메카라고 불리는 칠현사가 저 너머에 보인다.

칠현사 뒷편은 너무나 유명한 화염산.
화염산은 소설 '서유기'에도 등장하는 산으로 산 전체가 불타는 듯한 형상이라고 해서 이름붙여진 듯하다.
소설 '서유기'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일행이 서역으로 떠나는 중에 거대한 화염산을 맞딱뜨리게 된다.
손오공이 파초선을 빌려 불을 끄게 되는 배경이 바로 '화염산'







칠현사 입구 쪽의 여인들
아무래도 오늘은 여인들만의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게 분명했다.
막 칠현사 입구 쪽으로 들어서려는데, 문지기가 제지하며 나섰다.

















마자촌의 낯선 풍경들







우루무치같은 도시에서 만나는 위그르 사람들은 특유의 무뚝뚝하고 궂은 인상 때문에 겁이 나서 오히려 내가 피했지만,
작은 마을에서 만나는 위그르인들은  낯선 우리의 어색한 인삿말에도 꼬박꼬박 관심을 표시하며 웃어주는 것만으로 안도가 되었다.인도 라다크에서 만났던 라다키(라다크 사람들)들이 떠오른 것은 그들이 나누어진 친절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관광지화되어 버린 곳이라 이방인들의 느닷없는 방문에  달갑지 않을만도 할텐데 미소를 보이며 반가움을 표시해주었으니


지금까지의 내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했다.
게다가, 아무리 내가 한국인이라고는 하지만 외형적으로 봤을 때는 한족漢族가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한족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중국 정부에 반감이 많은 위그르인들의 입장에선 그다지 달갑지 않은 손님일 수도 있을 텐데도 말이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형성된 이 마을은 마자촌(麻扎村)이라고 불린다.
위구르인들의 전통과 풍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마을은 신쟝 웨이우얼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에서  가장 오랜된 촌락이다.
고창왕국 시대부터 이곳에 위그르인들이 살았다고 하니 꽤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모스크 주변에 대개 100여 가구가 사는데 이들은 위구르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믿으며 민족적 색채가 강한 복식을 하고 있다.
그만큼 보수적 성향이 강할 것이라는 편견이 남아있어서 조금이라도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려 노력했던 게 사실이다.













저 손가락 표시가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깜찍하고 발랄한 표정으로...
여자아이들은 한결같이 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V자 같은 의미일까?











도란도란거거리며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숲 속에서 들려왔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창익씨가 카메라를 들자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돌리거나 숨어버렸다.
아마도 수많은 여행자들이 그런 요청을 했을 테니 본능적으로 나오는 방어태세였으리라.
그러면서 한 아이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손을 내밀며 뭔가를 요구했다.
네팔의 아이들처럼 '사탕'이나 '볼펜'을 요구하는 것 같긴 한데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가웃거렸다.



사실 난 아이들의 사진을 많이 찍지는 않는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피사체가 아이들이긴 하지만 단지 귀엽다는 이유만으로는 선뜻 카메라에 손이 가지 않는다.
주관적인 느낌만을 쫓아 사진을 찍는 편식증이 강하기 때문에 버릇없이 치근대는 아이들은 슬쩍 외면해버리기 일쑤다.


몇 장을 찍어서 아이들에게 사진을 인화해서 건냈더니 외면하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감당할 수 없을 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버리는 습성이 몸에 배인 탓에 슬쩍 자리를 떠나려 하니 함께 한 일행은 그게 더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포토 프린터로 대단한 위세를 부릴 생각은 꿈에도 없지만 이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찍어주기엔 가지고 간 필름도 턱없이 부족한데다,
여행의 초반부인 까닭에 미리 조절을 해놓지 않으면 정작 간절히 사진을 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못주는 불상사도 생기기 마련이었다.












경운기가 지나가는 길 가로 오래된 마쟈르(무덤)들이 펼쳐져 있다.







칠현사 입구 쪽














총총걸음으로 급하게 올라가는 두 여자와 아이.
맞은 편 야산에서 망원렌즈로 담았다.















                 천불동 계곡쪽으로 가지 않고 마을이 훤히 내다보이는 언덕을 힘겹게 올랐다.
                 화염산의 한 자락에 위치한 작은 토욕구 풍경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화염산 구릉지에는 '아이쓰하부카이하이푸(艾斯哈布凯海夫)'라고 부르는 거대한 마쟈르(묘지)가 보였다.
                 이는 '성인이 거주하는 동굴'이라는 페르시아어로 먼 옛날 이곳에 이슬람을 전파하러 온 이슬람의 선인 7명이
                 화염산 서쪽 기슭에 묻혔다고 해서 기인했는데 다른 말로 칠현사(七賢祠)라고도 한다.
               
                토욕구는 불교와 이슬람교가 만나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유입되면서 거치게 된 곳이기도 하면서도 이슬람의 7대 성지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중국 이슬람의 최대 성지로 '동방의 메카'라 불리우는 유서깊은 곳이다.

 




마쟈르를 둘러싼 성곽 안으로 아낙들이 느릿하게 오르고 있었다.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종교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마쟈르로 올라가는 작은 길 위에서 총총 걸음으로 올라가는 아낙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그렇지만
올라가려는 우리 앞을 가로막는 문지기의 다급한 제지를 봤을 때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늘 새로웠다.
손에 잡힐 듯 독특한 풍경들이 가깝고 친숙하게 다가왔다.
걸어다닐 때마다 일어나는 먼지가 이 땅이 얼마나 건조하고 척박한 곳인지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위구르인들의 오래된 흙집들이 낮게 드러누워 있었고, 계곡을 따라 초록색의 수풀과 포도밭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오래 전에 조성된 수로는 이곳의 위그르인들에는 그야말로 생명수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칠현사 입









마자촌의 오래된 집들.
무덥고 건조한 사막기후에 특화된 그들만의 가옥양식들이 독특하다.







오래된 모스크와 주변의 집들.
모스크를 중심으로 100여가구의 위구르인들이 살고 있다.
이 마자촌은 위구르인들의 마을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마을.







마치 순례자처럼 칠현사의 언덕을 돌고 있는 여자들.













내가 서 있는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들..
바짝 메마른 삭막한 풍경 속에서도 냇가를 따라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그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위구르인들.
일조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산되는 과일(포도,하미과 등)들은 한결같이 선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칠현사와 마자촌의 전경










이곳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야말로 거칠고 황폐한 사막과 만나게 된다.





















의외로 집안은 서늘하다.
수박과 하미과(일종의 멜론)가 집에 굴러 다닐 정도로 이곳의 대표적인 작물이다.









이 집도, 저 집도 수박과 하미과로 가득하다.

















예쁘게 차려입은 위구르 젊은이들의 데이트.
우루무치같은 대도시에서는 너무 당연한 저런 광경이 왠지 토욕구에서는 낯설게 보였다.













'약시스무시스(안녕하세요라는 위구르 말)'

고개를 숙여 영감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하얀 수염이 성성한 영감님의 환한 미소가 더위에 지친 나그네를 위로하고 있었다.
옆에 앉으라며 기꺼이 자리까지 내주시는 영감님.
때론 작은 친절이 눈물날 정도로 고마울 때가 있는 꼭 그때가 그랬다.

그 고마움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찍은 영감님의 사진.
사진 속의 영감님은 언제나 그렇듯이 이방인을 향해 밝은 미소를 보내셨다.











영감님과 그의 아들










마당에 놓여진 두개의 침대와 아이.
남자들은 주로 바깥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한낮의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여름.
기온차가 심한 사막지역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밤에도 찜통같은 더위가 이어지기 때문이란다.












'고민거古民居 the ancient fork house'라고 적혀있는 저 집은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전통적인 양식으로 만들어진 집이다.












제지하는 문지기 때문에 결국 칠현사로는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퍼질러 앉고 말았다.
그렇찮아도 혹독한 더위 탓에 내내 힘들었는데, 정작 볼거리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 의지가 힘없이 상실되고 말았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바라본 여인들...
그 뒤가 마쟈르(무덤)와 화염산이다.









늘 그렇지만 독사진은 그림자로 대신한다.
허리에 찬 각종 장비들이 왠지 모르게 버겁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