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여행] 사계절을 동시에 경험한 천산가는 길



 

대협곡을 건너기 전, 작은 언덕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스위스를 연상시킬만큼 예뻤다.
몇 점 구름이 걸린 푸른 하늘과 초록의 수풀이 가득 덮힌 언덕, 한가로히 풀을 뜯고 양떼,
계곡 속을 흐르는 거친 강물, 점점히 흩어진 아담한 집들 그리고 빛나는 태양….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티엔샨天山일대를 중국의 스위스라고 일컫는 모양이다.
비록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은 다를 지 몰라도 분명 자연경관만큼은 스위스의 그것과 아주 흡사했다.


교통체증이 심한데다 텁텁하고 건조한 공기로 가득찬 우루무치 시내를 잠시 벗어났을 뿐인데도 
이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과도 같았다.
비록 곧이어 등장하는 깊은 협곡의 아찔함이 조금 전의  감동을 금새 잊게 만들기는 했지만 색다른 풍경을 그렇게 만날 수 있었다.
첫번째 협곡을 넘어서자 평탄한 곳이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거대한 협곡이 앞을 가로 막았다.
계곡 밑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다 떨릴 정도로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듯이 좁은 협곡을 지나면서 몇 번이나 카자크 유목민들과 조우해야 했다.
신선한 초지를 찾아 어디론가 이동하는 유목민들과 그들의 수많은 양떼와 야크, 말들이 이미 좁은 도로를 뒤엉킨 채 점령하고 있었다.
경적을 울리며 나아가자 소리에 놀란 양들이 둥근 꼬리를 들썩이며 이내 길을 열었다.
꼬리치며 달아나는 양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풋'하며 웃음이 터졌다.

 






 

몇 번 다녀온 스위스를 연상시킬만큼 아름다운 천산입구


 









입구 부근에서 만난 당나귀를 타고 천산을 오르는 타지크 아이.
이들은 여름철이면 목초지를 찾아서 양과 야크를 몰고 천산으로 오른다고 했다.













티엔산天山 일대에 흩어져 유목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카자크인(하자크주 哈萨克族)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위구르인들처럼 투르크(터키) 계통이긴 하지만 정착화된 농경생활을 하는 위구르인들과는 달리 카자크인들은 여전히 신장일대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다.
키르키즈인들처럼 몽골과 투르크 계통의 혼혈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몽골로이드에 가까운 편이다.
중국의 카자크인들은 대부분 신장 이리 카자크 자치구의 이리 초원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일부는 칭하이성과 간쑤성에도 살고 있다.
예전에는 유목민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점차 농경으로 많이 정착하고 있는 추세이며 그에 따라 소의 중요성도 많이 부각되고 있다.
목축경제도 근대화되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많은 이동은 하지 않고 있다.
우루무치에서 차로 2시간 거리(75km)에 있는 남산목장 (南山牧場 : 난샨무창)이라는 곳이 바로 카자크 족의 또다른 터전이다.
남산목장은 푸른 신록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20m 높이의 작은 폭포도 있으며 능선마다 말과 양들이 풀을 뜯는 그야말로 천연목장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그들의 유르트(천막)를 개방하고 있고 기마쇼를 관람하거나 직접 말을 몰아볼 수도 있다. 










좁은 길을 가득 채운 양떼들.
클랙션을 울리면 뒤뚱거리는 엉덩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도망가는 모습은 꽤나 희화적이다.











 

목초지를 찾아서 이동하는 타지크족들.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문득 그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버릇처럼 생겨 버렸다.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북해도와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우리의 선입견으로는 그다지 풍요로운 삶을 사는 곳은 아니었다.
네팔이 그랬고, 몽골이 그랬으며, 인도와 베트남 북부지방도 그랬고 이번에 다녀온 실크로드 인근과 동티벳 지역의 상황도 다를 게 없었다.
한결같이 척박하고 황량했으며 때로는 지저분해서 과연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열악하기까지 했다.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벌떼처럼 달려드는 갸느린 인도의 릭샤꾼들에게선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면,
몽골이나 실크로드, 동티벳 등의 초원지역에서 만나는 유목민들에게선 시큼한 야크버터 냄새가 났고 땟국물이 가득한 꾀죄죄한 몰골과 거침없이 초원을 질주하는 모습에선 섬뜩한 두려움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억척스럽게 달라붙으며 조악한 기념품을 강매하는 사파의 흐몽족 여인들에게선 귀찮음보다는 오히려 삶의 아픈 편린이 전이되어 왔다.
짧은 푼힐 트래킹을 하면서 만났던 네팔 아이들이 두 손 모아 '나마스테'로 인사를 건내거나, 마니차(경전을 넣어놓은 경통)를 돌리던 라다키 아줌머니가 시원한 미소로 '쭐레'라는 인삿말을 건낼 땐 나도 모르게 감동이 밀려왔다.


















 

풀색이 너무 예뻐서 망원렌즈로 문득 바라보니 그곳엔
아이와 엄마가 다정스럽게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이곳저곳 떠돌던 주인없는 말들





희안하게도,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과정이야말로 나는 진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관광지화되어 버린 느낌없는 유적지에서 배회하는 관광같은 여행보다는 척박하고 거친 환경이지만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과 조우하는 여행은 그래서 기분이 들뜬다.
인도의 라다크와 바라나시 여행을 마치고 잠시 델리의 스팟 호텔에 머물고 있을 때 만난 젊은 한국인 아가씨가 떠오른다.
부슬부슬 비와 와서 그런지 그렇찮아도 더운 6월의 델리는 습도까지 더해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숨통이 막힐 지경이었다.
짜이(인도인들이 즐겨마시는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요란한 바하르간지의 아침 골목을 구경하고 있는데 우의까지 덮어쓴 그녀가 씩씩하게 지나가는 게 보였다.
창이 큰 모자와 두터운 청바지에 배낭까지 단단하게 짊어진 그녀는 한 손에는 두꺼운 가이드북까지 들고는 결연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대번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복장은 전형적인 한국인 배낭여행자의 그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쁘게 걸어가는 그녀를 잠시 세우고서는 짜이 한 잔을 건냈다.
짜이를 처음 마셔본다면서 멈칫거리는 그녀에게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가시냐고 물었더니 슬그머니 가이드북을 보여주었다.
가이드북을 찬찬히 훑어보니 인터넷에서 뽑아온 추천 루트와 정보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이 많은 곳을 하룻만에 다 돌아다니실 거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얼마전에 다녀온 유럽여행도 이렇게 다녔다'면서 '시간이 없기 때문에 가급적 많은 곳을 보기 위해서 아침부터 서둘러 나왔다'고 했다.
'우의는 바람이 통하지 않아서 아주 더울 것'이라고 했더니 '그래도 비 맞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라며 말을 얼버부렸다.
그녀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짙게 깔려 있었다.








집 안의 작은 목초지에 들어온 '주인없는 말들'을 내쫓고 있는 여인과 아이







목초지로 향하고 있는 소떼들

맞은편에서 차자 오면 소떼들은 익숙한 듯 바깥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려 걸었다.
그 밑은 천길 낭떨어지.



















남들이 다 가는 보편적인 루트는 많은 정보 때문에 편하기야 하겠지만 자기만의 색깔있는 여행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가면 어딜 꼭 가봐야 한다는 것도 왠지 우스광스럽고 어딜 가면 꼭 그걸 먹어야 한다는 것조차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극히 개성이 중시되고 있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하고 있는 한국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행만큼은 몰개성화되고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여행 스타일도 틀리고, 생각도 틀리고, 입맛도 제각기 다 다를텐데도 그곳에 가면 유명한 유적지에 들러서 반드시 증명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같은 게 우리 여행자들에게는 있는게 아닐까.
두터운 우의를 덮어쓴 채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빈틈없이 잘 짜여진 스케쥴대로 여행을 한다면 그게 과연 여행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조바심도 곁들여졌다. 


변화무쌍하게도, 하룻만에 그야말로  다양한 날씨를 접하게 되었다.
우루무치를 출발할 무렵엔 조금씩 비가 흩뿌리기 시작하더니, 첫번째 협곡을 지나기 직전에는 파란 하늘이 열리면서 실록의 푸르름이 더욱 돋보이기까지 했다.
두번째 협곡을 지나면서부터는 다시 조금씩 비가 흩뿌리는가 싶더니, 어렵사리 올라간 3,800m의 빙천입구에선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뜨거운 여름과 성그런 가을 그리고 차가운 초겨울의 날씨를 한꺼번에 경험한 날이기도 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혹독한 열풍에 내내 시달리던 우리에게 천산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고도를 점점 높여 올라가자 어느새 만연한 여름이던 이곳의 날씨는 가을처럼 스산하게 변하는가 싶더니,
서늘한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기후 변화가 심한 천산
오르면 오를 수록 날씨는 혹독하게 변해갔다.
짙은 구름과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고, 수은주는 겉잡을 수 없이 내려갔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가을 하늘을 연상시킬만큼 하늘은 코발트빛이었는데...















저 먼곳에는 소나기가 창궐(?)하고,
그 앞에는 멋진 반쪽짜리 구름까지 떴다.








그리고 마침내 설산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7월말인데도, 해발고도가 4,000m가 넘는 이곳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진눈깨비가 흩뿌리고  흰 눈이 소담스럽게 쌓인 고개 정상에는 카자크인들의 유르트(천막)가 몇 동 서 있었다.
商店이라고 적힌 것을 보고 가게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왠 걸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음식점이었다.
새벽부터 서둔 탓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올라가서 그런지 어느새 배가 고팠다.
어제까지만 해도 뜨거운 사막을 거닐며 덥다가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춥다며 잠바를 주섬주섬 꺼내입었다.
이런 것을 두고 바로 격세지감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어쨋든 눈 내리는 낯선 풍경 속의 카자크 사람들의 유르트는 더없이 따뜻하고 안락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양고기 꼬치를 그곳에서 먹을 수 있었다.
신장 지역을 여행하면서 수없이 많은 양고기 꼬치를 먹었지만 적어도 이곳만큼 맛있는 양고기 꼬치를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먹어본 적이 없다.
신선하게 씹히는 고기의 질감도 좋았지만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도 전혀 나지 않는데다 양념까지 아주 적당하게 뿌려져 있었다.
입 안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즉석에서 바로 제공되는 재료(?)의 신선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쉬운 말로 재료를 운운하긴 하지만 그 재료를 담아내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만은 아니었다.



유르트 아래에 있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조금 전까지 '음메'거리며 목소리를 높여 울던 양이었는데
카자크 남자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양의 숨통을 끊어놓고는 능숙한 솜씨로 가죽과 살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눈발이 흩뿌렸고 막 숨을 거둔 양의 몸에서는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인간은 잔인하구나'를 끊임없이 외치면서도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스스로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잡은 양을 손질하고 있는 타지크인들








우루무치에서 온 위구르 남자가 관심을 보이자 타지크 사람들은 기꺼이 그에게 칼을 양보했다.


















해발고도 4,000m가 넘는 천산고갯길에 있는 타지크족의 작은 휴게소.
유르트(천막)의 문 쪽에 씌여진 상점이라는 표식으로 그곳이 휴게소임을 알 수 있었다.









잡은 양을 걸어놓는 걸쇠









주문이 들어오면 걸쇠에 걸린 양고기를 떼내어 즉석에서 칼질한 다음 양꼬치를 만들었다.
카메라를 들이밀자 부끄러운 미소를 짓는 타지크 여인







유르트의 뒷쪽은 그야말로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걸쇠에 걸린 양고기










양을 잡는 타지크 남자.
그 곁에서 관심을 보인 채 사진을 찍고 있는 일행
조금전까지 혼자 격리된 채 슬픈 울음을 삼키던 양이었는데...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양의 해체작업(?)은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잡은 양은 저렇게 걸쇠에 걸어놓은 뒤, 보자기를 씌워 보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