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 가을볕이 유난히 좋았던 몽골의 초원에서




 

 

 

 








배가 고파왔다.

낯선 마을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식사를 할 참이었다.
그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식당에선 밥이 안된다고 했다.
마침 여주인이 자리를 비워 소녀만 가게를 지키던 그런 가게이었다.
빵과 울란바타르에서 사온 남은 컵라면으로 허기를 떼워야 했다.
비록 끼니를 제대로 채울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먹으니 여유시간이 제법 많이 남았다.


선생님들과 주변을 산책하면서 마을을 스케치했다.
식당이 있던 그 집 주변부터 돌기 시작했다.
유독 파랗게 칠해진 그 집의 파란색감이 푸른 하늘과 묘하게 어우러져 눈에 띄었다.
저 위로 올라가면 하늘에 맞닿을 수 있을까.

 

 

 

 

 

 






 


 

부끄럼 많은 아이가 비스듬히 기댄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면 도망가고 다시 나타나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다시 나타난 녀석을 향해 사정없이 셔터를 눌렀다.

녀석의 누이쯤으로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도
까르르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찾아왔을 이방인의 모습이 신기했을까.






 

 



 

 



 

폼나게 서 있는 몽골 청년.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젊은 청년 몇몇이서 맥주를 마시며 서성댔다.

 

 

 

 

 

 

 

 

 

저 아이처럼,
나도 푸른 하늘 속으로 잠기고 싶었다.
왠지 뒷모습이 슬퍼보이는 아이.
그 푸른 하늘 속으로 파묻혀 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닌 소녀였다.

 

 

 

  

 
















 

 

 

빛살 좋던 언덕에 서서 바람과 빛을 담았다.
바람결에 스러지는 풀잎들의 그 기분좋은 느낌...
온전히 색깔이 바랜 그 풀잎 위로 몽골의 낯선 바람이 불어와 내 얼굴을 스쳤다.

 

 

 

  

 

 

 

 






 

 

 

일주일동안 우리가 탄 푸르공을 운전한 친구의 이름은 ‘잉케’였다.
다소 복잡한 이름이었지만, 그는 줄여서 ‘잉케’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잉케는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인 배우‘키아누 리부스’와 많이 닮아 있었다.
몽골의 ‘키아누 리부스’라고 칭할만큼 핸섬가이인 그는, 잘 생긴 외모만큼이나 자신의 일에도 열정을 다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일일히 우리의 짐을 챙겼고, 그야말로 화장실 가는 시간도 잊은 채 몽골의 초원을 내달렸다.
게다가 우리가 불편해 할까봐 수시로 상황을 점검해주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31살의 그는 울란바타르에서 아내와 그를 닮은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제법 친해진 뒤에, 그가 건내준 사진 속에는 환하게 웃는 그의 아이들의 모습이 그 속에 있었다.
‘잉케랑 꼭 닮았다’라고 치켜세우니, 수줍은 웃음이 그의 입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잉케는 그런 사내였다.

하지만, 처음엔 약간의 트러블도 있었다.

우리의 여행 목적이 사진이듯, 사진을 찍기 위해 정차하는 횟수가 많아지자 잉케는 짜증 섞인 얼굴로 우리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내게 시계를 내보이며, ‘이렇게 지체했다가는 숙소에 너무 늦게 들어가게 된다’며
우려섞인 목소리로 짜증을 낸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사진찍는 횟수가 점점 늘어가자, 어느새 잉케도 포기한 모양이었다.

오히려 경치좋은 곳이 나타나면 알아서 차를 세웠고,
전망좋은 언덕에 올라 편안하게 일몰을 담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아마도 몽골여행은 그 때문에 정말 편안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서툰 한국어와 영어로 우리-특히 젊은 나와 의사소통을 했다.

다행히 UB게스트하우스 사장이 한국인이었던 탓에 한국말 몇 마디도 제법 한데다,
비록 단어지만 영어까지 할 수 있어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잉케와 나는 나란히 앞좌석에 앉아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에게서 간단한 몽골어도 익힐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리 와’라는 애기를 들은 그는 몽골에서도 ‘이리’라는 말을 쓴다고 했다.

바로 ‘오다’라는 뜻. 그 다음부턴 아이들을 만나면 ‘이리’라는 말을 꼭 사용했다.

그렇게 다가온 녀석들을 향해 사진도 찍고, 사탕도 주고… 내가 찍은 사진을 아이들에게도 보여주었다.
유용하게 사용한 몽골어 중 하나였다.
잉케는 우리의 길잡이였으며, 좋은 친구였고, 조력자였다.

 

 

 

 




 
















 



 

우연히 만난 쌍봉낙타 떼.
일제히 'stop'을 외치자 잉케는 짜증내지 않고 천천히 차를 길 한 켠에 세웠다.
우리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던 목동들이 저 멀리서 달려왔다.
멋지게 몰이를 시작하는 목동들...
파란하늘과 구름이 역광을 받아 빛이 났고 뽀얀 먼지가 그 속에 가득했다.

사내들은 알아서 포즈도 취해주고 알아서 몰이도 해줬다.
사진 찍는 우리를 향한 속깊은 배려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득한 현기증같은 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달려 낙타 몰이를 하는 사내들이 빛났다.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저녁 석양이 낮게 깔리기 시작한다.
잉케는 한참이나, 없는 길을 달려 작은 언덕으로 차를 몰았다.
저 고개만 지나면 우리의 목적지가 있는 게르인데,
그곳에선 해넘이를 담을 수가 없다는 게 그의 대략적인 설명이었다.
잉케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웠다.

몽골의 해넘이는 언제봐도 장관이었다.

앞에 걸칠 게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라 아쉽긴 했지만, 그런대로 기대하는 색감은 나왔다.
하늘가로 번져가는 구름떼들...
그 날의 마지막 석양빛을 받으며...
차 한 대가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