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라다크의 아름다운 오지 마을, 알치 가는 길




 

알치(Alchi)로 향한다.
'라다크의 오지 마을 중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데다...' 라는
가이드북에 적힌 내용 때문에 왠지 '알치'가 끌렸기 때문이다.

알치는 레에서 70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아름다운 설산과 인더스강이 마주치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마을인데다,
10세기 말에 린체 장포 대사가 세운 알치곰파가 유명하다고 한다.

8시 40분에 출발한다는 첫버스를 타기 위해 일찌감치 서둘러 버스스탠드로 향한다.

티벳탄 브레드와 서브지만디(채소시장)에서 구입한 큼직막한 망고로 간단하게 요기를 해결하긴 했지만,
만만하지 않는 여정이 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
지도를 보면서, 또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버스스탠드에 도착했고, 또 물어서 알치 행 버스에 오른다.

탑승객들의 안락함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낡고 오래된 버스였다.

앞 뒤 좌석간 간격이 워낙 촘촘해서 등을 뒤로 바짝대지 않으면 가는 내내 무릎이 다 까일 판이다.
문 틈이 워낙 크서 그 속으로 들어오는 먼지의 양이 또 장난이 아니다.
뼈와 뼈가 부딪힐 정도로 무릎을 구부려 앉아있다 보면, 통로는 어느새 큼지막한 짐에 의해 점령되고...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장비가 많은 내겐 고충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거나 버스는 달린다.

황량하고 메마른 언덕을 너머, 인적마저 끊어진 사막같은 지대를 지나고,
아슬아슬한 계곡의 옆구리를 따라 가던 낡은 버스는 잠시 작은 마을에 정차해서 달궈진 엔진의 열기를 식힌다.

20분 동안의 휴식시간.

동승한 인도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작은 식당으로 몰려갔고, 기름에 튀겨진 짜파티와 커리 등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다.
며칠이 지났지만, 인도 음식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지 않아 그냥 굶기로 한다.
지린내가 풀풀 나는 뒷간에서 간단하게 볼 일을 보고, 잠시 담배를 피우며 마을을 둘러본다.



 

 

 









 

 



레에서 알치입구인 인더스 브리지Indus bridge'까지는 3시간 남짓되는 거리에 요금은 50루피다.

미리 차장에게 '알치' 입구인 인더스 브릿지에 내려달라고 부탁을 해놓았더니,
그 앞에 다다르자 휘파람을 불며 내게 신호를 보낸다.

내가 타고 온 낡은 버스는 먼지를 풀풀 휘날리며 다른 행선지로 떠나갔고,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한 가운데 떨궈진 초라한 느낌을 받는다.
입구에 씌여진 'Alchi gonpa 4km'라는 낯선 푯말이 문득 스산함을 야기시킨다.
레 행 버스를 기다리는 모자母子를 멀리서나마 카메라에 담고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다행이 혼자는 아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인도 청년들이 잠시나마 길동무가 된다.

인더스 브릿지와 사스풀 쪽에서 달려오는 버스 한 대...

제법 이름이 거창해서 꽤 기대했었는데,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작은 철교에 불과하다.
황톳빛깔의 인더스 강이 요동치는 이 낯선 라다크 지방의 허허로운 풍경.
그 속엔 어떤 기대도, 눈부심도 없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섣부른 기대는 실망을 낳는 법이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지, 단지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도 지친다.

인도인 청년들과 한참이나 떨어져서 그야말로 터벅터벅 걷는다.

발뿌리에 채이는 낯선 돌맹이들.
맨 발가락 사이로 시나브로 스며드는 말라버린 흙들.
이건 마치 영화에서나 봐왔던 이름 모를 행성의 계곡을 걷는 기분이 든다.

가져온 물마져 다 떨어져 심한 갈증에 허덕였다.

준비성 결핍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은 늘 육체의 고통을 수반했다.


 

 

 

 

 

 

 


 


4km...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짧은 거리지만, 머릿속은 황폐함이 어느새 가득하다.

어느새 알치 입구를 알리는 커다란 문이 나온다.

그렇다고 알치에 다달은 건 아니다.
저 문을 지나고서도 꽤 걸어야 겨우 알치에 도착한다.

나는 배고프고, 목말랐으며, 무거운 장비의 무게 때문에 금새 지쳐갔다.

휴식 시간에 먹지 못한 인도음식들이 한없이 그리웠다.
나름대로 현지식도 꽤 잘 먹기 때문에 어디 가서도 먹거리 때문에 걱정하고 그러지 않았는데,
며칠 전 판공초에서 먹은 그 석연찮은 맛의 볶음밥'이 던져준 후유증 때문인 것 같다.

용감하지 못한 내 도전정신이 이때만큼 아쉬울 때가 없었다.













 











 

조금씩 초록색 나무와 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알치에 다 와가는 모양이다.
피곤과 갈증에 지친 가운데에서도 사진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 산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저 먼 발치에서 청년들이 나를 부르며 손짓한다.

그쪽이 아니니, 이쪽으로 오라는 말이다.

그럴 때면 손 한 번 흔들어주고, 다시 그들을 따라 나선다.
고도가 높은 탓에 뛰어가서 그들을 따라잡은 건 아예 포기했다.
아니, 그들을 따라잡을 이유도 필요도 없다.

나는 나만의 시간이 있는 것이고, 어떻게든 알치에만 도착하면 된다.

이 낯선 땅, 알치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찍을 것인가.
또다른 상념 덩어리가 내 머릿속을 배회하고 있다.

 

 










 







 

 

 

앞서 가던 청년들이 가게에 들러 물건을 사길래, 슬쩍 다가간다.
제법 말간 웃음을 가진 두 아이가 가게를 보고 있다.
구색을 갖추긴 했지만, 70년대 우리의 가게만큼 볼품없고 초라하다.

내가 마실 '물'과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 준 청년들을 위해 감사의 표시로 '비스킷'을 산다.

아이 하나가 물 하나에 50루피(약 1,250원)라며 다섯 손가락을 꼽길래, 의아해서 다시 묻는다.
레에서도 10루피(약 250원) 면 살 수 있는 게 물인데, 아무리 오지라도 이건 너무 폭리다 싶어 괘심한 마음이 치민다.

'이 녀석들, 이게 무슨 50루피야.'

비싸다는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청년 하나가 나를 거들며 나선다.

힌디말로 한참이나 떠드는 그들의 대화를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하듯 쳐다보는데...
가볍게 청년의 낙승으로 끝난 모양이다. 꼬마아이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원래 가격대로 10루피를 지불했다.
잠시 착각을 한 표정으로 꼬마녀석은 '미스테이크'를 연발한다.

오랫동안 갈증에 시달린 탓에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물맛은 달고 시원했지만 허수룩한 병 뚜껑을 바라보니 왠지 재활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한 번 파고든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

인도에서 생수나 음료수를 살 때는 반드시 병 뚜껑을 확인해야 한다.

병 뚜껑 위에 비닐로 보호막을 씌운 생수는 오케이~!
보호 비닐 없이 그냥 병 뚜껑으로 막아놓은 것은 한 번쯤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위생관념이 전무한 인도이기 때문에,
잘못 마신 물로 인해 배탈이나 설사로 여행 내내 고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여행체질인 탓인 지 여행 중에 그런 일로 고생을 한 적은 없지만, 매사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쟁기를 들고 밭으로 가는 여인을 망원렌즈로 담는다.
여인이 쓰고 있는 모자가 참 독특하다.
레에서 보지 못한 이색적인 것이라서 더 눈길이 가는 지 모르겠다.

여인은 한쪽 물길을 닫고 또다른 물길을 트면서 밭일을 시작한다.

독특한 모자는 곱게 벗어서 한 켠에 놓아두고, 김을 매는 여인...
거친 삶이 주는 신산스러움보다는 삶에 대한 경건한 의식 같아서 고개를 숙인다.

한참동안 서서 바라보는 이방인의 눈길을 한 번쯤 느꼈을 법도 한데,

여인은 정성스럽게 잡초를 뽑고 물길을 트는 데만 신경을 기울인다.


 

 

 

 

 

 

 

 

 

풍광이 아름답다는 '알치'에서 정말 건성으로 풍경사진을 찍는다.
내가 보기엔 그저 그런 라다크 지방 특유의 풍경이라서, 딱히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시선은 잠시잠시 만나는 마을 사람들에게로 쏠린다.

아직 성수기 직전이라 그런지, '알치' 역시 한산하긴 마찬가지다.

나처럼 버스를 이용해서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는 지극히 소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짚을 타고 이곳을 방문한다.
그리고 마치 풀잎에 스치는 바람처럼 짧게 머물다 어디론가 떠나간다.








 

 





 

 

볼 것 없는 알치 곰파를 성의없이 한 바퀴 둘러보고는 다시 인더스브릿지로 돌아오는 길이다.
아까 풀숲에서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던 소녀 둘이 이번엔 길가에 앉아서 둘만의 놀이에 탐닉해 있다.
'포토'라고 물어보자, 대답 대신 웃음으로 화답하는 소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밭에선 소녀들의 부모가 밭일을 하다, 물끄러미 우리를 지켜본다.

헤지고 남루한 옷차림을 한 그녀들이지만, 미소만큼은 백만불 짜리다.
건강하고 때묻지 않은 소녀들의 미소에 여행 내내 가지고 있던 의구심을 스르륵 내려놓는다.

의구심...

그건 바로 삶에 관한 문제다.
이 척박한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가장 기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된다.
'그들에게도 웃음이 있을까, 이 아이들은 행복할까.'로 시작되는 그 터무니없는 물음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방식대로 세상의 모든 삶을 저울질하려는 못된 버릇이 생겨난 모양이다.

많은 땅들을 여행하면서, 정형화된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하려고 노력했고,
오로지 그들의 삶에 의미를 두려고 하는데도 여행의 초기에는 버릇처럼 그 '물음'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인도문명을 태동시킨 인더스강...
그 상류의 어디쯤엔가 '알치'는 위치해 있다.
황톳물로 굽이치는 인더스 강은 이 곳 라다크 지방에선 생명수와도 같다.
인더스 강이 흐르는 좁은 협곡을 따라 마치 오아시스처럼 푸른 숲이 있고 옹기종기 모여사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다.

 



 

 

 

 

 

 

 

설산의 눈이 녹아 어느새 길 위에까지 물이 흐른다.
슬쩍 손을 젖셨는데, 마치 얼음장처럼 차다.
봄이 되면, 서서히 녹은 설산의 물들이 하나 둘 모여서 인더스 강으로 흘러간다.
물은 숲을 만들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마을을 만들고
사람들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식량을 제공해 준다.
문명은 그렇게 시작된 모양이다.

모포 같은 걸 발로 밟으며 빨고 있는 두 소녀.

소녀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멀리까지 낭랑하게 들려온다.
인더스 브릿지에서 알치까지의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어 물도 깨끗한데다,
띄엄띄엄 간헐적으로 지나다니는 차들 때문에 위험도 적다.
빨래하는 소녀들의 몸짓은 마치 고무줄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발놀림처럼 경쾌하다.

 







 





 


 

갈증은 기껏 해결했다고 하지만, 배고픔은 그대로였다.
'알치'에도 식당은 있었지만, 선뜻 들어갈 용기가 생기지 않아 그냥 굶기로 한다.
배고픔이 쌓이고 쌓이면 그때서는 어쩔 수 없이 끼니를 해결해야 하겠지만,
아직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공복으로 여행을 한다는 건 참 무모한 짓이다.
아까부터 쌓여가는 육체의 피로도가 한층 가증되는데다, 사람들 앞에 선뜻 다가갈 용기마저 상실하게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귀찮다.
지치고 피곤하고 귀찮아서 말도 꺼내기 싫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쭐래'라는 인삿말만 툭 던지고 느린 걸음으로 돌아간다.
가끔,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는 방금 마주쳤던 사람들의 뒷모습만 담을 뿐이다.

 






 





 





 



인더스 브릿지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황량하다.

신록을 뽐내던 초록의 수풀이 고개 너머에서 사라지면 그야말로 스산하고 거친 풍광이 펼쳐진다.
인적마저 끊기고, 하늘마저 우울하게 내려앉아 있다.
한 두 방울씩 듣는 빗줄기...
사위는 적막 속에 쌓인 듯 고요하다.
한 번씩 휘젖고 가는 바람들이 마른 대지를 훓고 있다.

우울이 조장되고 있다.

 

 








 





 

 

'레, 버스~?'

레 방향을 손짓으로 가르키며 버스를 기다리는 노인에게 단 두 마디만 사용해서 묻는다.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다 뭔가를 설명하시려는 듯 라다키 말로 장황하게 혼자 읊조리신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느긋하게 미소만 지은 채 무거운 장비를 내려놓는다.

내가 짊어진 장비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웠던가.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다.

잠시 버스를 기다리면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문다.

노인에게 담배를 권했지만, 손사레를 치신다.
몽골에선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했었는데,
라다크에선 담배를 통한 접근법마저 쉽지 않다.

이렇게 만난 것도 연緣인데 싶어, 카메라를 들어 '포토'라고 묻자 노인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아까보다 표정이 많이 굳어졌고 여전히 웅크린 채로 렌즈만 응시하신다.
렌즈까지 바꿔가며 몇 컷을 더 찍었는데, 때마침 버스가 달려오는 게 아닌가.
사스풀에서 내려오는 걸로 봐서 내가 탈 버스는 아니지만, 그 버스를 본 노인은 엉거주춤하게 일어나신다.

아, 작게 인화한 사진을 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
사진을 보며 활짝 웃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는데...
노인을 태운 버스는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또 그렇게 떠나간다.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하지만 내게 남겨진 것은 아쉬움의 흔적 뿐...


 

 





 






 




1시간이 넘도록 기다린 버스는 나를 보고도 본체만체 지나쳐 버린다.

한 눈에 딱 봐도, 버스는 이미 사람과 짐으로 만원인 상태...
경적 한 번 울리고는 스쳐가 듯 지나쳐버리는 버스가 야속하기만 하다.
하긴, 지금의 내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길동무가 생겼다.

어디론가 놀러갔다가 막 무료 픽업차량에서 내린 소년 둘이 바로 그들이다.
근처의 사스풀에 사는 두 녀석들은 나를 태우지 않고 떠나는 버스를 보며 같이 안타까워 한다.
다음 버스가 오려면 아직 1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다.

죽치고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보다는 근처의 사스풀로 이동해서 요깃거리라도

할 식당이나 가게를 찾아보내는 게 더 좋겠다고 판단한 나는 그들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잠시 동행이 된다.

맹랑하고 당돌한 16살 소년과 제법 어른스러운 17살 소년과 함께 길을 간다.

사스풀은 인더스 브릿지에서 바로 건너편에 있다.
바로 눈 앞에 있는 듯 가깝게 느껴지지만, 막상 오르막을 걸어올라가다 보면 꽤 멀게 느껴진다.
지치고 배 고픈 상태라 더 그런 지도 모른다.

소년들에게 이름을 물어보는데, 워낙 길어서 금새 잊어버린다.

길가에 난 꽃을 보며 라다키 말로 가르쳐 주고, 돌맹이를 보며 라다키 말로 또 뭐라고 가르켜준다.
'학생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왜 학교에 가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서 쉰단다.

그래, 샹카르 곰파에 갔을 때, 그 라마가 말씀하신 게 언뜻 기억이 난다.

'내일부터 이틀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하루 종일 법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시간 나시면 들리셔서 참관하셔도 됩니다.'

 

 





 









 




알치와 비교해 보면 사스풀이 얼마나 큰 마을인지 알게 된다.

인더스강을 끼고 형성된 수목지대도 워낙 긴데다, 도로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접근성도 용이한 편이다.
때늦은 봄이어서 그런지 곳곳에 유채꽃이 피어 있고,
신록도 푸르름을 더 해 가고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하고 척박한 주변의 산들과 비교했을 때도 분명히 사스풀은 축복받은 땅임에 틀림이 없다.

게다가, 비록 어리지만 즐겁고 유쾌한 두 길동무가 있지 않은가.
공복에다 겹겹히 쌓인 피곤만 아니라면 더 없이 즐거울 여행길이다.













 





 





 

소년들은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준다며 나를 이끈다.
마침 17살짜리 소년의 집이 도로변에 있어서 지나치게 되는데,
소년은 집에서 들러 잠시 차라도 한 잔 하는 게 어떠냐면서 내 의사를 묻는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애야~ 마음의 여유가 없단다.

배도 너무 고프고, 쌓인 피곤 때문에 몸뚱아리는 금새 쓰러질 것 같단다.
다음에...정말 기회가 있다면 다음엔 꼭 그렇게 하자.

사실, 현재를 살아가는 라다크 사람의 집을 보고 싶었다.

몇 번, 먼 발치에서 겹눈질로 언뜻 보긴 했지만, 그저 피상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아서 마치 정물화 같이 고정된 느낌이었다.

몇 점 되지 않은 세간살이와 켜켜히 묻어있는 먼지처럼 가난한 그들...

하지만, 그 속에도 행복이 있고 또다른 즐거움이 있지 않겠는가.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고 체험해보는 것이야말로 정말 값어치 있는 여행이리라.
하지만, 그걸 접어야 한다는 게 못내 아쉽다.
왜 이렇게 알치 여행에서는 아쉬움의 연속일까.

집 근처의 밭에서 일을 하는 한 할머니를 소년이 부른다.

소년의 친할머니라고 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한참동안 애길 나누던 두 사람...
할머니의 모습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소년은 또 외치듯이 할머니에게 주문을 한다.

"할매~! 옆에 있는 이 분이 할매 사진 찍고 싶대요~! 그대로 계셔 보세요."

"밭에서 김맨다고 옷도 제대로 못 갖춰 입었는데 괜찮겠나?"

뭐 그런 대화 같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곱게 웃으시면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신다.
제법 먼거리였기 때문에 400mm망원으로 그녀를 담는다.
날이 어두운 탓에 혹시 핀이 나갈 지 몰라 iso도 200으로 올린다.
그렇게 담은 소년의 할머니 사진...

"쭐래~ 쭐래~"(고맙습니다.)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한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두 어린 길동무의 사진을 찍어준다.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다.

뺀질거리면서 당돌하기까지 한 16살 소년...(위 사진)

제법 어른스런 티를 내며 사근사근 애기하던 17살 소년...(아래 사진)이 바로 그들이다.
짧은 1시간여의 동행이었지만, 그들을 만나 참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들에게 사진 하나씩을 뽑아서 건내고, 좀 전에 찍은 할머니 사진까지 뽑아드린다.

'안녕, 친구들~'

버스가 금새 올라온다.

녀석들의 사진을 찍고 뽑아줄 수 있는 시간이 그나마 있었으니, 다행스럽다.
아쉬움이 많았던 짧은 알치 여행.
그리고, 즐거웠던 나의 길동무들이여.

안녕.

쭐래~!